[SF 단편] 전설의 밤


아이작 아시모프의 창작 단편소설입니다.

작가님의 풍부한 상상력과 기발한 작품을 소개하고자 퍼왔습니다.

문제가 될 시 삭제하겠습니다.


[SF 단편] 전설의 밤

by 아이작 아시모프


천 년에 하룻밤만  별이 보인다면, 어떻게 인간이 신의 존재를  믿고 숭배하며 

수많은 세대 동안 천국에 대한 기억을 보존할 수 있겠는가.

  - 에머슨


  싸로 대학교의 국장 아톤77은  아랫입술을 호전적으로 불쑥 내밀고 격노한 표정으로 젊은 신문기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테레몬762는 태연히  그의 분노를 잘 받아넘기고 있었다.  지금은 광범위하게 읽혀지는 그의 칼럼이  한낱 애송이 

기자의 정신나간 아이디어로 취급받던 젊은 시절에, 그는 불가능해 보이는 인터뷰 전문이었다. 

그 대가로 그에게 돌아온 것은 타박상과 눈언저리의 검은 멍, 부러진  뼈 등이었지만 덕분에 그는 풍부한 자신감과 냉정함을 

얻을 수 있었다.

  아톤77은 감정을 억제하느라  떨리는 목소리로, 그러나 유명한  천문학자 특유의 주의깊고 다소 현학적인 어투로 말했다.

  “기자양반. 내게 그런 뻔뻔스런 제의를 하러 오다니 당신도 정말 강심장이군.”

  천문대의 전송사진 전문가 미니25가 혀로 마른 입술을 적시며 안달이 나서 쉰 목소리로 말했다.

  “저, 교수님, 어쨌든...”

  국장은 그를 돌아보며 흰 눈썹을 치켜뜨고 말했다.

  “참견하지 말게, 비니. 나는  자네를 믿고 기꺼이 이 친구를 데려와도 좋다고 했네만 지금 대드는 것은 참을 수 없어.”

  테레몬은 지금이 끼여 들 때라고 생각했다.

  “아톤 국장님, 제가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게 해주십시오. 제 생각에는...”

  아톤은 반박했다.

  “지난 두 달 동안  자네가 써온 그 일간지 칼럼을 생각해 볼  때... 나는 지금 자네가 말하려는 것이 어떤 것이든 들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지 않네. 자네는 나와 내  동료들이 세계적인 조직체를 만들어서  이미 피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린 이 위험

에 대비하려는 노력에 반대하는 광범위한 신문 캠페인을 이끌어 오고 있지 않나? 이젠 가도 좋네.”

  말을 마치자 그는 돌아서서 이  행성의 여섯 개 태양 중 가장 밝은 감마가 지고 있는 것을  우울하게 바라보았다.

 그것은 벌써 어두워져서 지평선의  안개 속으로 노랗게 가라앉고있었다.  

아톤은 자기가 맨 정신으로 그 모습을  다시는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톤은 당황했다.

  “안 돼, 기다려. 이리 오게!”

  그는 격렬하게 손짓했다.

  “자네에게 기사거리를 주겠네.”

  기자는 노인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아톤은 바깥을 가리켰다.

  “여섯 개의 태양 중 하늘에 남은 것은 베타밖에 없네. 보고 있나?”

  그것은 불필요한  질문이었다. 베타는 거의 천정에  와 있었다. 이미 넘어가고 있는 감마의 밝은 광선이 사라져 감에 따라, 

 베타의 붉은빛이 대지를 색다른 오랜지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베타는 원일점에 있었으므로 작게 보였다. 그것은  테레몬이 지금까지 보아 온 것 중 가장 작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베타는  라가쉬 하늘의 의심할 바 없는  지배자였다. 

지금은 라가쉬의 태양인 알파조차도 지평선  아래로 져버리고 하늘에는 알파와 가장 가까운 별인 적색위성 베타만이 홀로 떠 있었다.

  위를 향한 아톤의 얼굴은 햇빛 속에서 붉게 물들고 있었다.

아톤이 말했다.

  “이제 네  시간도 지나기 않아서,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이  문명은 종말을 맞게 된다네.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네. 

보다시피  베타는 하늘에 남아 있는 단 하나의 태양이야.”

  그는 잔인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걸 쓰게. 아무도 그걸 읽을 사람은 없을걸세.”

  “하지만 만약 네 시간이 지나고  또 네 시간이 더 지나도 아무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죠?”

  테레몬은 부드럽게 물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말게. 충분히 많은 일들이 일어날테니.”

  “당연하겠죠. 하지만 그래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또다시 비니25가 말문을 열었다.

  “교수님, 제 생각으로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테레몬은 말했다.

  “표결에 붙이시죠, 아톤 국장님.”

  지금까지 주의깊게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던  나머지 다섯명의 천문대 연구원들 사이에 동요가 일어났다.

  아톤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럴 필요 없네.”

  그는 주머니 시계를 꺼냈다.

  “자네의 훌륭한 친구 비니가 이렇게 간곡히 주장하니 자네에게 5분의 시간을 주겠네.

얘기해 보게.”

  “좋습니다. 자,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제 눈으로 직접 본 사실들을 기사로 쓸 수 있게 허락하신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뭐 있습니까? 만약 국장님의 예언이 사실이라면 제 위치가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 경우 제 칼럼은 쓸 수 없을 테니까요. 

반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국장님께서는 조롱당하거나 더 나쁜 일도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그런 조롱 따위는  우호적인 손길에 맡겨 버리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죠.”

  아톤은 코방귀를 뀌며 말했다.

  “우호적인 손길이라는 건 자네 손을 뜻하는 건가?”

  “물론입니다.”

  테레몬은 다리를 꼬고 앉았다.

  “제 칼럼은 때때로 다소 거친 점이 있긴  하지만, 언제나 사람들을 위해서 의심스러운 점은  유리하게 해석합니다.  

지금이 라가쉬에게  <종말이 다가왔느니라.>하고 설교하는  시대는 아니죠. 국장님은  사람들이 더 이상  묵시록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오히려 그것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해서 과학자들로 하여금 얼굴을 돌리고 컬트교도

들이 결국 옳았노라고 말하게 만들죠.”

  “그런 게 이니라네, 젊은이.”

  아톤이 가로막으며 말했다.

  “우리 자료 중  많은 부분이 컬트교로부터 얻은 것이긴 하지만,  우리의 결론에는 컬트교의 신비주의 같은 것은 포함돼 있지  

않네. 사실은 사실 그 자체이고 컬트교의 이른바  <신화>라는 것도 그 본질은  분명한 사실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네. 

우리는 그것들을 들춰내서  그 신비를 벗겨 내었네. 보장하건데 이젠 컬트교가 자네보다 우리를 더 증오할 거야.”

  “저는 당신들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저는 단지 시민들의  분위기가 험학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들은 성나 있습니다.”

  아톤은 비웃으면서 입술을 비꼬았다.

  “성내라고 하게.”

  “좋습니다. 하지만 내일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일이라는 건 없어!”

  “만약 있다면요.  내일이 온다고 치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봅시다. 시민들의 분노는 심각한 사태를 몰고 올 겁니다. 

  분명합니다, 교수님.”

  국장은 준엄하게 칼럼리스트를 주시하며 말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우리를 돕기 위해 자네가 계획하고 있던 일은 뭔가?”

  “글쎄요.”

  테레몬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제 제안은 사람들을  제게 맡기시라는 겁니다. 제게는 어떤 일의  우스운 면만 보이도록 사물을 잘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물론  참기 힘드실 거라는 생각은 듭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모두를  바보들의 집단으로 보이게 만들어

  야 할 테니까요.  하지만 만약 제가 사람들로 하여금 여러분을  비웃도록 만든다면 사람들은 아마 화내는 것을 잊어버리게 

  될  겁니다. 그 대가로 저희 사장님이 요구하는 건 독점 출판권이 전부입니다.”

  비니가 갑자기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교수님, 저희는 모두 그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두 달간 우리는 우리의 이론이나 재산, 그  둘 중의 하나에 잘못이 

  있을 백만분의  1의 확률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다 고려해 왔습니다. 우리는  그 백만분의 1의 확률 역시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책상 주위에 둘러  앉아 있던 사람들 모두가 동의의 뜻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아톤은 마치 입 안 가득히 뭔가 쓴 것을 물고는 그것을 뱉지도 삼키지도 못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원한다면 여기 머물러도 좋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 일을 방해하는 

   것은 그만뒀으면 하네.”

  아톤은 뒷짐을  진 채 일그러진  얼굴을 앞으로 내밀고는  결연하게 내뱉었다. 

만약 새로운 목소리가 방해하지만  않았다면 그는 언제까지나 그렇게 하고 있었

을 것이다.

  “안녕, 안녕, 안녕!”

  하이테너의 목소리와 함께 나타난  새로운 방문객의 살찐 뺨은 즐거운 미소로 가득 차 있었다.

  “여기는 왜  이렇게 시체보관소 같은 분위기지?  아무도 기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아통은 당황해서 언짢은 기색으로 말했다.

  “도대체 여기서 뭘  하는 건가, 쉬린? 나는 자네가 대피소에  남아 있기로 한 줄 알고 있었는데.”

  쉬린은 웃으면서 뚱뚱한 몸을 의자에 던졌다.

  “나는 한창 달아오르고  있는 바로 이곳에 있고 싶네. 내게도  호기심이 있다는 걸 모르겠나?

 나는  컬트교도들이 언제나 떠들어대는 바로 그 별이라는 것을 보고 싶네. 

대피소에서는 심리학자가  자기 밥값을 할 만한 데가 없다네. 그들에게는 활동적이고 힘센  남자와 어린애들을 키울 수  

있는 건강한 여자가 필요하지. 나 말인가? 90킬로의 몸무게는 활동적인 남자로서는  너무 무겁고 애들을 키우는 데도 

나 같은  사람은 실패작이지. 그런데 뭐 때문에 군입을  하나 더 늘려서 그들을 괴롭히겠나? 나는 여기가 훨씬 더 좋다네.”

  테레몬이 활발한 목소리로 물었다.

  “도대체 대피소가 뭡니까, 교수님?”

  쉬린은 그  칼럼리스트를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그는 불쾌한 듯이  넓은 뺨을 불룩하게 하고서 말했다.

  “근데 빨강머리, 자네는 도대체 누군가?”

  아톤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무뚝뚝하게 투덜거렸다.

  “그 사람은 테레몬762라고 하는 신문기자라네. 자네도 들어봤을 텐데?”

  칼럼리스트는 손을 내밀었다.

  “당신은 싸론 대학교의 쉬린501이시죠,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대피소가 뭡니까, 교수님?”

  “글쎄...”

  쉬린은 말했다.

  “우리는 우리의 그... 말하자면 파멸에 대한  예언이 옳다는 것을 몇 사람에게 납득시켜서 그걸 구경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네. 

그리고 그중 몇  사람은 적절한 능력을 시험받은 사람들이지. 그들은 주로 천문대  연구원의 직계 가족들과 싸로 대학교의 교수 

요원들이고 그 밖에 외부 사람들도 조금  포함돼 있다네. 다 합치면 약3백 명  정도 되지만 4분의 3정도는 여자와 아이들이야.”

  “알겠습니다. 그들은  암흑과 그, 별이라는 것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숨어서 세계의 나머지 지역이 파멸할 때 그곳에서 버티고 

있도록 계획된 것이군요?”

  “할 수만 있다면. 아마 쉽지는 않을 거야. 모든 사람들은 미치광이가 되고 거대한 도시가  불길에 싸여 타오르는 속에서는,  

주위 환경은 살아 남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걸세 그러나 그들에게 음식과 물과 은신처와 무기가 있어.”

  “그게 다는 아니지.”

  아톤이 말했다.

  “그들은 오늘 우리가  수집할 기록을 제외한 모든  우리의 기록을 가지고 있네. 

그 기록들은 다음 주기의  문명을 위해 우리가 남길 모든 것이며, 바로 그것이야말로 끝까지 남아야 하는 것이라네. 

그 나머지는 무시해도 좋아.”

  테레몬은 낮고 긴 휘파람을  불고는 몇 분 동안 생각에 잠긴  채 앉아 있었다. 

탁자 주위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여러 명이 하는 체스판을 들고 나와 6인 경기를 시작했다. 

침묵 속에서 말들은 매우 빠르게 움직였다. 모든 눈이 체스판 위에 집중되어 있었다.

  테레몬은 그들을 응시하고 있다가 일어나서 쉬린과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는 아톤에게 다가갔다.

  “저 좀 보시겠습니까? 저  사람들이 방해하지 않을 만한 곳으로 갔으면 합니다. 여쭤 볼게 있습니다.”

  옆방에는 좀더 부드러운  의자가 놓여 있었다. 

창에는 두꺼운 불은  커텐이 드리워져 있고 바닥에는 밤색 카펫이 깔려 있었다. 

베타의  벽돌색과 어울려서 전체적으로는 마치 말라붙은 핏빛을 띠고 있었다.

  테레몬은 전율하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자, 단 1초 동안이라도 좋으니 백색광선을 한  번만 비춰 준다면 열 장의 신용장을 제공할 용의가 있어. 

감마나 델타만 하늘에 있어도 좋으련만...”

  “자네가 질문하고 싶은 게 뭔가?”

  아톤은 물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을 기억해 주게.  한 시간 15분 정도만 지나면 우리는 위층으로 올라가야  돼. 

그리고 그 다음에는 얘기할 시간이 없다네.”

  “제 의문점은 바로 이겁니다.”

  “테레몬은 벽에 기대어 서서 팔짱을 끼고 말했다.

  “교수님께서는 몇 시간만  지나면 온 세계가 암흑  속에 잠기고 모든 인간은 완전히 미쳐 버릴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알고 싶은 건 그  뒤에 숨은 과학입니다.”

  “아니, 아니야. 그렇게 물으면 안 돼!”

  갑자기 쉬린이 나왔다.

  “아톤에게 그런 걸  물으면, 물론 그가 대답해 줄 거라는  가정하에서 말이지만, 이 친구는 그림과 그래프를  한아름 꺼낼 거야. 

자네는 하나도 이해할 수 없을걸세. 내게 묻는다면 아마추어의 관점에서 설명해 주지.”

  “좋습니다. 그럼 당신께 여쭤 보겠습니다.”

  “그럼 난 우선 한잔 해야겠네.”

  쉬린은 손바닥을 비비면서 아톤을 바라보았다.

  “뭘 말인가?”

  아톤은 투덜거렸다.

  “멍청한 소리 하지 말게!”

  “자네가 어리석은 소리  하지 말게. 오늘 술은  안 되네. 내 동료들을 취하게 만드는 건 아주 쉬운 일이야. 그 사람들을 유혹하는 

것은 참을 수 없네.”

  심리학자는 툴툴대고 있었다. 

 그는 테레몬에게 돌아서서 그  날카로운 눈으로 테레몬을 꼼짝못하게 하고서 말하기 시작했다.

  “자네도 라가쉬 문명의 역사가 순환한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분명히 말하지만 순환한단 말이야!”

  테레몬은 신중하게 대답했다.

  “대강 그렇지. 지금 이  세기에 와서는 일반적으로 동의하는 이론이고. 이 순환의 속성은 가장 큰 수수께끼 중의 하나라네. 

아니 과거에는 그랬지. 우리는 여러 계열의 문명을  조사했는데, 그중의 아홉 문명은 분명히 그리고  나머지 문명들도 지금  

우리의 문명에 필적할  만큼 발달했다는 근거를  찾아냈다네. 그리고 그 모든 문명들이 하나도 예외없이  그 발전의 극한에 

이르렀을 때 불타서 파괴되었다는 것도 알아냈어. 그리고 아무도 그 이유를 말할 수 없었지. 모든 문화의 중심지는 그 알맹이까지 

다 불타  없어져서 그 원인에 대한 어떤 증거도 남기지 않았던 거야.”

  말이 끝나자마자 테레몬은 말했다.

  “석기 시대는 없었습니까?”

  “아마 있었겠지. 하지만 아직까지는  아무것도 알려진 바 없네. 그 시대의 사람들이 단지 지능이 있는 유인원 정도의 수준을  

못 벗어났다는 것 이외에는. 그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야.”

  “알겠습니다. 계속하시지요.”

  “이 순환하는 대이변에 대한 설명들도 있었지. 모두 환상적인 것들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불의 비가 내린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라가쉬가 가끔 태양을 통과한다고도 했네. 이것보다 더 황당한 설명들도 있었다네. 

하지만 이런 것들과는 전혀 다른 이론이 하나 있네.  그 이론은 수세기에 걸쳐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지.”

  “알았습니다. 당신은  컬트교도들이 그들의 묵시록에서 말하는  <별>의 신화를 말씀하시는 거지요?”

  “바로 맞췄네.”

  쉬린은 만족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컬트교도들은 2050년마다 라가쉬가 거대한 동굴로 들어가서 모든 태양이 사라지고 완전한 어둠이  온 세계를 덮는다고들 말하네.  

그리고 나면 <별>이라는 것이 나타나서는 사람들의 영혼을  빼앗아서 그들을 이성이 없는 짐승처럼 만들어 버리고, 그들로 하여금 

자신이 이룩한 문명을 파괴하게끔 만들어 버린다는군. 

물론 그들은 이  모든 것들을 종교 신화적인  언어로 뒤섞어 놓았지만 중심되는 

생각은 바로 이것이라네.”

  쉬린이 긴 한숨을 쉬는 동안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만유인력의 법칙까지 이르렀다네.”

  그는 만유인력이라는 말을  특히 강조해서 말했다. 바로 그때 아톤이  창 쪽으로 갑자기 나타나서 큰소리로 코방귀를 뀌더니 

방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두 사람은 그의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 잘못된 게 있습니까?”

  “특별한 건  없네. 두 사람의 연구원이  한 시간 전까지 오기로  돼 있었는데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다네.  

지금은 대단히 일손이 부족하다네. 왜냐하면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이 거의 모두 대피소로 가버렸거든.”

  “교수님께서는 그들 두  사람이 도망가 버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군요. 그렇죠?”

  “누구? 파로와 이모트 말인가? 물론 아니지.  하지만 그들이 제시간에 나타나지 않으면 조금 귀찮게 될걸세.”

  쉬린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눈을 깜박거렸다.

  “어쨌든, 아톤이 가고 없으니...”

  그는 가장 가까운 창문까지 발끝으로 걸어가서는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창문 바로 밑에 있는  상자에서 붉은 액체가 담긴 

병을 꺼냈다.  그가 그것을 흔들자 뭔가를 암시하듯 출렁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아톤이 이건 모를 거라고 생각했지.”

  쉬린은 빠른 걸음으로 탁자로 돌아오면서 말했다.

  “여기 잔은 하나밖에 없네.  자네가 손님이니까 그걸 가지게. 나는 병을 택하겠네.”

  그리고 그는 작은  컵을 적당히 채웠다. 병을 거꾸로 세우고  마시자 심리학자의 목젖이 아래 위로 움직였다.

 그리고 나서  그는 쩝쩝거리며 만족한 소리를 내더니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자네는 중력에 대해서 뭘 알고 있나?”

  “그것이 아주  최근의 성과라는 것  외에는 모릅니다. 그리고  아직은 그렇게 잘 정리되지 않았다면서요.  

거기에 사용되는 수학은 너무  어려워서 라가쉬에서 열두 사람만이 그걸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하던데요?”

  “하! 말도 안 되는 소리. 허튼 수작이야! 

나는 자네에게 그 속에  들어 있다는 기본적인 수학을 한 문장으로 말해 줄 수  있네. 

만유인력의 법칙이란 우주의 모든 물체 사이에 서로  끄는 힘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주어진 두  물체 사이에 존재하는 

이 힘의 양은, 두 물체의 질량 곱을  두 물체 사이의 거리의 제곱으로 나눈 것에 비례한다는 것이라네.”

  “그게 전부입니까?”

  “그걸로 충분하네. 그 법칙을 세우는 데 400년이 걸렸어.”

  “왜 그렇게 오래  걸렸죠? 교수님 말씀대로 하면 아주  단순하게 들리는데요.”

  “왜냐하면 위대한 법칙이란 번뜩이는 영감만으로 간파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말이야. 그런 법칙은 일반적으로 과학자로 가득 찬 세계의 수세기에 걸친 노력이  합쳐져서

 얻어지는 것이지.  제노비41이 라가쉬와 알파가  상호 공전하는 것이 아니라, 라가쉬가 알파의  주위를 도는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이래로 (그건400년 전이었지) 천문학자들은 계속 연구해 왔다네. 

여섯 개의 태양에 의한 복잡한 운동을 기록하고 분석하고 해석해 왔네.  계속해서 이론들이 발전하고 검토되고 서로 비교되면서  

개선되고, 또 버려지거나 살아남아서 또 다른  이론이 만들어졌지. 그건 엄청난 일이었다네.“

  테레몬은 생각에 잠겨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의 잔을 들어서 술을 한 잔 더 청했다. 

쉬린은 아까워하면서  겨우 몇 알의 루비구슬을 그의 잔에  떨어뜨려 주었다.

  “20년 전...”

  그는 목을 축인 뒤 계속 이야기했다.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여섯 개 태양의 궤도 운동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발표되었네. 그것은 위대한 승리였지.”

  쉬린은 술병을 든 채 일어나서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우리는 중요한  시점에 서 있네. 지난 10년간 알파에  대한 라가쉬의 운동은 중력에  의하여 계산되었네. 

그런데  계산 결과는 관측  사실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었어. 다른 태양들에 의한 섭동까지 모두 고려했는데도 말이네. 

법칙이 잘못되었거나 아직까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사실이 관련되었거나 둘 중 하나일세.”

  테레몬은 창가로 가서 쉬린과 함께 비탈 너머 지평선 위에 싸로시의 뾰족탑이 

핏빛으로 빛나는 것을 바라보았다. 

베타를 잠깐  바라보는 동안 신문기자는 의혹이 점점 더해갔다. 베타는 천정에서 작고 불길한 붉은 빛을 내고 있었다.”

  “계속 말씀하시지요, 교수님”

  테레몬은 부드럽게 말했다.

  “천문학자들은 여러 해  동안 방황하고 있었네. 그 전보다도 더  불안정한 이론을 내놓기도 했고  아톤이 컬트교를 끌어들이기 

전에는  그랬었다네. 컬트교의 지도자 소르5는 그 문제를 아주 단순화할 수 있는 분명한 자료들을 자기고 있었지.

 아톤은 새로운 방향을 연구를 시작했네.”

  “만약 라가쉬와 같이 빛을  내지 않는 행성체가 존재한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 자네도 알다시피 그것은 

반사광에 의한 빛밖에는 내지 못하네. 그리고 만약  그것이 라가쉬의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푸른색  바위로 구성되어 있다면, 

붉은 하늘에서 영원히 빛나는 태양의  밝은 광채가 그 빛을 완전

히 삼켜버려서 보이지 않게 돼버릴걸세.”

  테레몬은 휘파람을 불며 말했다.

  “별난 이론도 다 있군요.”

  “별나다고 생각하나? 한번 들어보게. 만약 이 위성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적당한 질량과 궤도를  가지고 라가쉬의 주위를 

공전해서, 이 위성의  인력이 라가쉬의 실제 궤도와 이론적인 예측 사이의 편차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자네는 어떤 일

이 벌어질거라고 생각하나?”

  칼럼리스트는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때로 이 위성은 태양의 경로를 가로지를 수도 있겠군요.”

  쉬린은 병에 남아 있던 것을 단숨에 비워 버렸다.

  “그리고 제 생각에는 그렇게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테레몬은 담담하게 말했다.

  “맞았어! 그러나 단 한 개의 태양만이 공전궤도면에 있다네.”

  그는 엄지 손가락으로 하늘에 움츠리듯이 떠 있는 태양을 가리키며 말했다.

  “베타! 그리고 일식은  태양들의 배열 구조상 베타가 가장 먼  거리에 있으면서 동시에 혼자서 하늘에 떠 있을 때 일어난다네.  

그리고 바로 그때 그 달은 언제나 최소거리에 와 있지. 달의 시직경이 베타보다  일곱 배나 크기 때문에 일식은 라가쉬와 전지역에서 

하루의 절반  동안 일어나게 되므로 이 행성의 어느 곳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네. 

이런  일식이 2049년마다 한 번씩 일어나는 거야.”

  테레몬의 안색이 표정 없는 가면처럼 굳어졌다.

  “그게 제가 쓸 기사입니까?”

  심리학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천문대에 있는 우리들)에겐 두  달의 여유가 있었네. 그리고 그 시간은 라가쉬의주민들에게 위험을 설득하기에는 불충분한  

시간이었네. 그러나 우리의 기록들은 대피소에 있고 오늘 우리는 일식을 촬영하네. 다음  문명 주기는 진리와 함께 시작할 것이고 

다음 일식이 돌아올  때에 인류는 마침내 그것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을 거야. 

생각해 보게나. 그것 역시 자네 기사거리의 일부이니까.”

  테레몬이 창문을  열고 창틀에 몸을  기대자 가벼운 바람이  커튼을 흔들었다. 

그가 햇빛에 붉게 물든 그의  손을 내려다보는 동안 바람은 그의 머리카락을 차

갑게 스쳐갔다. 갑자기 그는 돌아서서 반항조로 말했다.

  “도대체 그 암흑 속에서 저를 미치게 만드는 건 뭡니까?”

  쉬린은 무심하게 빈 술병을 돌리다가 속으로 미소지었다.

  “젊은이, 자네는 암흑을 경험해 본 적이 있나?”

  신문기자는 벽에 기대어 서서 생각했다.

  “아뇨, 경험해 봤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게 어떤 것인지는 저도 압니다. 바로 음...”

  테레몬은 손은 비비며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빛이 없는 상태지요. 동굴 속에서처럼.”

  “동굴 속에 가본 적 있나?”

  “동굴이라고요? 물론 없습니다.”

  심리학자는 눈썹을 찡그리며 젊은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커튼을 닫을 수 있으면 닫아 보세.”

  테레몬은 놀라서 말했다.

  “무엇 때문에요? 태양이  네다섯 개 떠 있을 때라면  빛을 조금 가리는 것이 편안하겠지만 지금은 아시다시피 충분한 양의 

햇빛도 없지 않습니까?”

  “바로 그것이라네. 커튼을 치게. 그리고 이리 와서 앉게.”

  “좋습니다.”

  테레몬은 장식술이 달린  끈을 세게 잡아당겼다. 붉은 커튼이 넓은  창문을 가로질러 미끄러지고 황동으로 만든 고리들이 

쇠막대위로 마찰음을 내면서 움직였다. 그리고 어두운 붉은색 그림자가 방을 뒤덮었다.

  탁자를 향해 걸어오는 테레몬의 발소리가 침묵  속에서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그는 반쯤걸어오다가 멈춰 서서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교수님, 교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길을 더듬어 보게.”

  쉬린은 긴장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하지만 교수님이 보이질 않습니다.”

  신문기자의 숨결이 거칠어졌다.

  “아무것도 볼 수 없어요.”

  준엄한 대답이 들렸다.

  “자네가 원하던 건 뭐였나? 이리 와서 앉게!”

  발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머뭇거리면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누군가가 의자를 더듬어 찾는 소리가 들렸다. 

테레몬의 목소리가 갸날프게 들렸다.

  “여기 왔습니다. 저는 음... 괜찮습니다.”

  “괜찮지, 안 그래?”

  “아, 아닙니다. 아주 무서웠습니다. 벽들이 마치...”

 그는 말을 멈췄다.

  “벽들이 제게 다가오는 것 같았습니다. 계속해서  그것들을 밀어 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미치고  있었던 것은 분명히 

아닙니다. 사실 그렇게까지 나쁜 기분은 아니었습니다.”

  “좋아, 커튼을 다시 열게.”

  어둠 속에서 조심스런 발소리가 들렸다. 테레몬이  장식술을 더듬어 잡느라 커튼에 부딪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커튼이 힘차게 주르륵 소리를 내며 열렸다. 붉은빛이 방안에 가득  찼다. 테레몬은 기쁨에 넘친 소리를 지르며 태양을 바라보았다. 

쉬린은 손등으로 땀을 닦아내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그냥 암실에 지나지 않네.”  

  “참을 만했습니다.”

   테레몬은 가볍게 말했다.

  “그렇지, 암실 정도면. 하지만 자네는 2년 전에 정글러 시 백 주년 기념 박람회에 간 적이 있지 않나?”

  “아뇨, 공교롭게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박람회라고는 하지만 6천 마일이란 여행하기엔 너무 먼 거리였죠.”

  “나는 거기에 갔었다네. 어쨌든 자네는 시작하자마자  한달 만에 오락에서 전례없는 기록을 세운 수수께끼의 터널에 대해서는 

들어 봤겠지?”

  “네, 근데 거기서 무슨 소란이라도 있었습니까?”

  “별건 아니라네. 그건  비밀에 붙여졌지. 

자네도 알겠지만 수수께끼의 터널은 그냥 한 1마일  정도의 빛이 없는 터널이었다네. 작은 무게차를  타고 암흑 속을 덜컹대며 

15분 동안 달리는 거지. 상당히 인기를 끌었다네.”

  “인기라고요?”

  “분명히 그랬어. 그것이 게임의 일부분일 때에는  공포에 질린다는 것도 매력있는 일이지. 아기들은 태어날 때부터 본능적인 세가지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네. 소음, 추락, 그리고 어둠이지. 이것이 바로 사람들 앞에 갑자기 뛰어가서 <왁>하고 소리를  지를 때 재미를 

느끼는  이유이고, 또 롤러 코스트를  재미있어 하는 이유가 된다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수수께끼의 터널이 돈을 벌기  시작한 이유

이기도 하다네. 사람들은  암흑 속에서 두려움에 떨며 숨도 못쉬고  반쯤 죽어서 나오지. 그렇지만 여전히 그들은 거기 참가하기 위해서 

돈을 지불했다네.”

  “잠깐만 기다려  보십시오. 이제 기억이 났습니다.  몇 사람이 죽어서 나왔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심리학자는 비웃으며 말했다.

  “흥, 두세 사람이 죽었지. 그건 아무것도 아니란  말일세! 그들은 죽은 사람의 가족에게 보상을  했고, 정글러 시의회를 설득해서 

 그 사건을 무마시켰지. 결국 그들은 이렇게 말했네.  심장이 약한 사람이 터널을 통과한다면 그것은  그들 자신의 책임이라고. 

뿐만 아니라 다시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그들은 입구에 있는 사무소에 의사 한 사람을 배치해 두고 차를 타는 사람은 누구나 

의무적으로 의료  검진을 받도록 했지. 확실히  그것은 더 많은 표가  팔리는 효과를 가져왔다네.”

  “그리고 나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또 다른 일이  벌어졌다네. 사람들은 완전히 건강한 채로 나왔지만 때로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생겼지. 궁전이나 맨션, 아파트, 공동  주택, 별장, 오두막, 판잣집, 텐트 등 어떤 종류의  집에도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 거야.”

  테레몬은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럼 그 사람들이 밖에서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잠은 어디서 자고요?”

  “밖에서.”

  “억지로라도 집 안에 들여 놨어야죠.”

  “아, 그렇게 했지. 그렇게 했어. 그랬더니  그들은 격렬한 광기에 빠져서 벽에 자기 머리를  찧으려고 날뛰는 거야. 

집  안으로 일단 들여 놓고  나면 구속복을 입히고 몰핀 주사를 놓지 않고는 가만히 있게 할 수가 없었다네.”

  “그들은 미쳤던게 틀림없습니다.”

  “분명히 그랬네. 터널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 중 열 명에 한  명이 그런 꼴로 나왔다네. 

그들은 심리학장게 불려갔는데,  우리는 가능한 단 한 가지 방법을 실행에 옮겼어. 박람회문을 닫는 것이었지.”

  쉬린은 두 손을 펼쳤다.

  “그 사람들의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

  마지막으로 테레몬이 물었다.

  “그들은 불행히도 암흑 속에서 자신들을 덮친 밀실 공포를 극복할 만한 정신적 탄력성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었지.

 암흑 속의 15분이란 긴 시간이라네. 자네는 기껏해야 2,3분 정도 있었는데도 내가 보기엔 상당히 당황했었어. 

터널에서 나온 사람들은  소위 밀실 공포의 고착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이네.  

암흑과 폐쇄 공간에 대한 그들의  잠재적 공포가 결정화되고 심해져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영원히 계속된다네. 

이것이 바로  어둠 속의 15분이 할  수 있는 일이지.”

  긴 침묵이 흐른 후, 테레몬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는 그것이 그렇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걸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자네의 진심은 믿고 싶지 않다는 거겠지.”

  쉬린은 닦아세우듯이 말했다.

  “자네는 믿는 것이 두려운 거야. 창 밖을 보게!”

  테레몬은 그렇게 했다. 심리학자는 쉬지 않고 계속 말했다.

  “암흑을 상상해 보게. 모든 곳에서.  자네가 볼 수 있는 한 어디에도 빛은 없네. 집, 나무, 들, 땅, 하늘 모든  것이 검은색이네! 

그리고 별이 나타난다네. 내가 아는 한 그것이 무엇이건간에. 이해가 가나?”

  “네, 이해가 갑니다.”

  테레몬은 반항적으로 말했다.

  쉬린은 갑자기 화가 나서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거짓말이야! 자네는 이해할  수 없어! 자네의 두뇌는  무한이나 영원과 같은 개념 이상의 어떤  개념에도 적합하지 않도록 

만들어져 있어. 자네는  단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지. 사실의  일부분조차 자네를 당혹하게 만들 수 있네. 

그리고 사실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에 자네의 두뇌는 이해  범위의 바깥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직면하게 되는 걸세. 

자네는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미쳐버릴 거야! 의심할 바 없이.”

  쉬린은 슬픈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리고 2천 년에  걸친 또 하나의 고통스런  투쟁이 허무로 막을 내리는 거야. 

내일이면 라가쉬의 어디에도 멀쩡하게 서 있는 도시는 하나도 없을걸세.”

  테레몬은 다소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말했다.

  “그렇게 되지 않을  겁니다. 저는 아직도 하늘에 해가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제가 미치게 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설사  제가 그렇게 되고, 모든 사람들이  다 미치광이가 된들 어떻게 도시를  파괴하겠습니까? 

우리는 광기를 가라앉힐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쉬린은 여전히 화가 나 있었다.

  “만약 자네가  암흑 속에 있게 되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자네가  원하게 될 것이 뭔지 아나? 

자네의 모든 본능이 요구하게  될 게 뭔지 아느냔 말일세. 그건 빛이야. 제기랄, 빛이라구!”

  “그런데요?”

  쉬린은 말했다.

  “선생, 당신은 뭔가를 불태우게 될  거란 말일세. 산불을 본 일이 있나? 캠핑 가서 나무로 스튜  요리를 해본 적 있나? 

자네도  알겠지만 나무에 불을 붙였을 때 얻을 수 있는 건  열만이 아니란 말일세. 거기서는 빛도 나오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지. 어두워지면 사람들은  빛을 원하게 되고 그들은 그것을 얻으려고 할 거야.”

  “그래서 나무를 불태웁니까?”

  “그들은 손에  넣을 수 있는 건  뭐든지 태우게 되네. 그들은  빛을 얻으려고 하지. 

뭔가를 태워야겠는데 나무는 손쉽게 얻어지지 않네. 그래서 그들은 가까운 데에 있는 것은 뭐든지  태울 거야.

 그들은 빛을 얻게 되고  거주 지역의 중심부는 어디든지 화염에 휩싸이게 되네!”

  테레몬은 말을 잃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의 거친 숨소리 때문에 닫힌 문 뒤의 바로 옆방에서 들여오는 갑작스런 소동을  거의 느낄 수 없었다. 

쉬린은 자기 말이 사실처럼 들리도록 애쓰면서 말했다.

  “이모트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네. 그와 파로가  돌아온 것 같으니 가서 어떻게 왔는지 보도록 하세.”

  “그게 좋겠습니다.”

  테레몬은 주얼거렸다. 그는 긴 한숨을 쉬고 몸을 한 번 떨었다.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 방에서는 연구원들이 외출복을 벗고 있는 두 사람에게 몰려들어 법석을 떨고 있었다.

그들은 쏟아지는 질문들을 대충 얼버무리고 있었다.  

아톤은 부산을 떨며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가서 새로온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화를 내며 말했다.

  “자네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30분도 안 남았다는  것을 알고나 있나? 도대체 어디에 있었나?”

  파로24는 앉아서 손바닥을  비볐다. 그의 뺨은 밖의 냉기 때문에  상기되어 있었다.

  “이모트와 저는 조금 정신나간 것처럼 보이는  실험을 방금 마쳤습니다. 저희는 암흑과 별에 대해서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아 보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상황을 직접 만들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했지요.”

  듣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 혼란스런 웅성거림이  지나갔다. 그리고 아톤의 눈이 갑자기 관심의 빛을 보였다.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데? 어떻게 그런 일을 하게 됐지?”

  파로는 말했다.

  “이모트와 저는 오래 전부터 그  생각을 하고 있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일을  했습니다. 

이모트는 도시 안에  둥근 지붕이 있는 낮은  일층집을 하나 알고 있는데, 그것은 제  생각에는 한때 박물관으로 쓰였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저는 그곳으로 가서 가능한 한 완전한 암흑으로 만들기 위하여 검은색 벨벳으로 꼭대기에서 바닥까지 덮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천장과 지붕에 몇  개의 작은 구멍을 뚫고 조그만  금속 뚜껑으로 덮고 나서, 한 번의  스위치 조작으로 뚜껑들이 모두 

한꺼번에  열릴 수 있도록 장치했습니다. 적어도 그  부분만은 저희가 직접 하지  않았습니다. 목수와 전기 기사,  그리고 몇 명의 인부

를 고용했지요. 돈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요점을 지붕에 있는 그 구멍들을 통해 우리가 빛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별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죠.”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침묵이 뒤따랐다. 아톤은 급히 말했다.

  “자네들은 개인적인 실험을 할 권리가...”

  파로는 겸연쩍어하는 듯이 보였다.

  “알고 있습니다, 교수님.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모트와 저는 이 실험이 다소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 효과가 실제로 나타난다면 쉬린이  이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했던 내용으로  볼 때 저희들이 미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고 그런 위험은 스스로 감당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

  대답한 사람은 이모트였다.

  “저희는 들어가서  문을 닫고 어둠에  눈이 익숙해 질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것은 극도로 오싹한 느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완전한  암흑 속에서는 마치 천장과 벽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그 느낌을 

이겨내고 스위치를 올렸습니다. 금속 뚜껑들이  열리고 지붕은 조그만 빛의 점들로 가득차서 반짝였습니다.”

  “그래서?”

  “그런데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 실험의  이상한 부분이었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건 구멍 뚫린 지붕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보였습니다. 저희은 실험을 계속해서 되풀이했습니다. 그게 저희가 늦은 이유입니다. 

여전히 아무런 효과도 볼 수 없었습니다.”

  충격을 받은 듯  침묵이 뒤따랐다. 그리고 모든 눈이 쉬린에게로  향했는데 그는 꼼짝 않고 입을 벌린 채 앉아 있었다.

  테레몬이 처음으로 말을 꺼냈다.

  “쉬린 교수님은 이 실험 결과가  당신이 세운 이론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고 계시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테레몬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웃었다.

  그러나 쉬린이 손을 들며 말했다.

  “잠시 기다리게. 내가 충분히 생각할 수 있게 해주게.”

그리고 나서 그는 손가락으로 깍지를 끼고 있었다.  그가 머리를 들었을 때 그의 눈에는 놀라움도 의혹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는 말을 마칠  수가 없었다. 어딘가 위쪽에서  날카롭게 <쨍그랑>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비니가 계단을 달려 올라가면서 말했다.

  “도대체 뭐야?”

  나머지 사람들도 그를 따랐다.

 

  사건은 급작스럽게  일어났다. 

돔에  올라가자마자 비는 사진건판들이  산산히 부숴져 있고 한 사람이 그것을 보고 있는  무서운 광경을 목격했다. 

그는 침입자에게 사납게 몸을 날려 그의 목을 죽어라고 잡았다. 거친 격투가 벌어졌다. 다른 연구원들이 합세하자 침입자는  

6명의 성난 사람들에게 짓눌려 헉헉거리며 숨을 내뿜고 있었다.

  아톤은 마지막으로 올라와서 무거운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를 일으키게!”

  그들은 마지못해 떨어졌다. 침입자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옷이 찢어지고 이마에는 멍이 든 채  끌려 일어섰다. 

그는 컬트교의 영향을 받은  듯 정성들여 꼰 짧은 노란색 턱수염을  가지고 있었다. 

비니는 그의 손을 목깃으로  옮겨서 움켜쥐고 거칠게 흔들며 말했다.

  “좋아, 이 도둑놈아.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했어? 이 건판들은...”

  컬트교도는 차갑게 반박했다.

  “난 그 뒤에 있지 않았어! 그건 사고였어.”

  비니는 강렬한 눈빛으로 으르렁거렸다.

  “알았어. 너는 카메라 바로 뒤에 있었지. 그렇다면 사진 건판에 사고가 난 건 너를 위해선 요행이었다. 

만약 네놈이 스내핑 베르타나  그 외에 하나라도 더 건드렸다면 너를 서서히 고문해서 죽여버렸을 거야. 이렇게...”

  그는 주먹을 뒤로 뺐다. 아톤이 그의 소매를 잡았다.

  “멈춰! 그를 놔줘.”

  젊은 기술자는  망설이다가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팔을 내렸다.  아톤은 그를 한쪽으로 밀어내고 컬트교도 앞에 섰다.

  “자네 이름은 라티머지, 그렇지 않나?”

  컬트교도는 딱딱하게 절은 하고는 자기 엉덩이에 있는 기호를 가리켰다.

  “저는 라티머25, 쏘르5전하의 3급 부관입니다.”

  아톤은 흰 눈썹을 위로 치켜뜨며 말했다.

  “그리고 자네는 내가  지난주에 전하를 찾아 뵈었을 때에 함께  있었지, 그렇지 않나?”

  라티머는 다시 한번 절을 했다.

  쉬린은 친절한 태도로 미소지으며 말했다.

  “자네는 단호한 저주꾼이군,  그렇지? 내가 증명해 줄  것이 있네. 자네는 저 젊은이를 창문에서 봤겠지? 

그는 힘세고 거친 친구일세. 주먹도 잘 쓰고, 게다가 문외한이기 때문에 일식이  시작된 후에 그가 할  일이라곤 자네를 감시하는 

일 외에는 없네. 그의 옆에는  내가 있을걸세. 격렬한 주먹다짐을 하기에는 조금 뚱뚱한 편이지만 아직도 도울 수는 있다네.”

  쉬린은 칼럼리스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옆에 가서 앉게, 테레몬. 그냥 형식적으로 말이네. 이봐, 테레몬!”

  그러나 신문기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입술까지 창백해져 있었다. 하늘을 가리키는 그의  손가락은 떨고 있었고, 그의  

목소리는 건조하게 갈라져 있었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을 돌린 순간 얼어붙은 듯이 모든 숨소리가 멈추었다.

  베타의 한쪽 가장자리가 잘려 나가고 없었던 것이다!

  검게 변한 부분은 손톱 두께 정도밖에 안 되었지만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운명의 신호로 확대되어 보였다. 

그들은 아주  잠깐 동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고 혼란스런 상황은 그보다 더 짧았다. 

각자는  미리 정해진 자기 위치로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 중요한  순간에 감정에 휩쓸릴 여유는 없었다. 

그들은 단순히 해야 할 일이 있는 과학자일 뿐이었다. 아톤조차 감정이 가라앉았다.

  쉬린은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첫번째 접촉은 15분  전에 일어난 것이 틀림없어. 조금 빠르긴  하지만 계산 오차를 고려한다면 아주 정확하네.”

  쉬린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아직도  창 밖을 응시하고 있는 테레몬에게 발끝으로 다가가서 그를 살짝 끌어당겼다.

  “아톤은 화가 나 있다네.”

  쉬린이 속삭였다.

  “그러니 가까이  가지 말게. 아톤은  라티머 때문에 벌어진  소동으로 최초의 접촉 순간을 놓쳐 버렸다네.

 그러니 만약 자네가  그를 방해하면 자네를 창문 밖으로 집어 던져 버릴걸세.”

  테레몬은 짤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앉았다. 쉬린은 그를  바라보고는 놀라면서 말했다.

  “이런 제기랄, 자네는 떨고 있군.”

  “네?”

  테레몬은 마른 입술을 적시며 웃으려고 노력했다.

  “기분이 좋지 않을 뿐입니다. 사실입니다.”

  심리학자의 눈빛이 굳어졌다.

  “기가 죽은 거 아닌가?”

  “아뇨!”

  테레몬은 화가 나서 소리쳤다.

  “제게 기회를 좀 주시겠습니까?  저는 사실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이런 황당무계한 이야기는 믿지 않았습니다.

이 상황에 적을할  수 있게 시간을 좀 주십시오. 교수님은 두 달, 아니 그 이상 준비해 오신던 일 아닙니까?”

  “그건 자네가 옳아.”

  쉬린은 생각에 잠겨서 대답했다.

  “교수님께서는 제가 지나치게 겁에 질려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아닙니까? 좋습니다. 제 이야기를 좀  들어 보십시오. 

저는 신문기자로서 어떤 이야기를 보도할 임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심리학자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알겠네. 직업적인 자세. 바로 그거지?”

  “그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교수님,  저는 지금 당신이 마시던 그 술의 절반짜리 크기라도 좋으니 술 한 병만 

준다면 제 오른팔이라도 잘라 주고 싶은 심정입니다.누군가에게 술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그건 바로 접니다.”

  테레몬은 말을 멈췄다. 쉬린이 갑자기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저 소리가 들리나? 들어 보게.”

  테레몬은 그가 턱  끝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컬트교도를 보았다.  그는 주

위에 대해서는 잊어버린 채 창문을 향해 의기 양양한 얼굴을 하고 노래부르듯이 

단조롭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까?”

  칼럼리스트는 속삭였다.

  “그는 지금 묵시록 제5장을 인용하고 있는 거라네.”

  쉬린은 대답하고는 다급히 말했다.

  “제발 잠자코 들어 보게.”

  컬트교도의 목소리가 갑자기 열정적으로 높아졌다.

  “그리고 그때에 태양 베타는 그  공전중의 가장 긴 시간 동안 하늘의 외로운 파수꾼이 되었도다. 

그 공전 시간의 절반 동안  그것은 홀로 차가운 빛을 라가쉬의 머리 위에  뿌렸도다. 

그리고 정오에 트리곤의 도시에서  벤드렛2가 나타나서 트리곤의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오, 너희 죄인들이여!  그대들이 정의의 길을 멸시하였으나 심판의 날은  올 것이니라. 

이제 곧 동굴이 라가쉬와  라가쉬에 속한 모든 것을 삼키러 오리라.>

그리고  그가 말하고 있는 동안에조차 캄캄한 동굴의 혓바닥은 베타의 가장자리를 지나, 라가쉬의 

어디에서도 베타를 볼 수 없었도다. 

베타가 사라지자 인간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으며 영혼의 두려움이 그들을 엄습하였도다. 

동굴의 암흑이  라가쉬를 덮치자 땅 위에서는 한줌의 빛도  찾을 수 없었도다. 

인간은 장님과 같이 되었으며 이웃의  숨결이 얼굴에 느껴지는데도 그를 볼 수는 없었도다.  

바야흐로 어둠 속에서 수많은 별들이 나타났도다. 

그리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가락이 흘러나와 나뭇잎들조차 혀로 변하여 기적을 노래하였도다. 

바로 그때 인간의 영혼은 그 몸을  떠났고 버려진 인간의 육체는 야수와 같이 되어 버렸도다.  

캄캄한 라가쉬의 도시 위를 그들은 야수의  소리를 지르며 헤매고 다녔도다. 

그때  별로부터 하늘의 불길이 쏟아져 내려와 그것이  닿은 라가쉬의 모든 도시는 불꽃 속에서 

 완전히 파괴되어 인간과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도다. 그때에도...”

  라티머의 어조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의  눈빛은 변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자기에게 열중하고 있는  두 사람의 존재를 알아 차린 것  같았다. 

숨쉬기 위해 멈추지도 않은 채 그의  목소리 음색은 순조롭게 변했으며 음절은 더욱 유창해졌다.

  테레몬은 놀라움에 사로잡혀 바라보았다. 

그 단어들은  그가 익숙한 말과는 거리가 좀 있는 것 같았다. 강세에 미묘한  변화가 있었고 모음의 억양에도 약간의 

변화가 보였다. 그뿐이었다.  그런데도 라티머의 이야기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쉬린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고대어로 말을 바꾼  것이라네. 아미 그들의 용어로는 제2차  주기의 언어일 거야. 

자네도 알겠지만 묵시록은 원래 그 언어로 씌여졌지.”

  “상관없습니다. 들을 건 다 들었으니까요.”

  테레몬은 그의 의자를 옮기고 이제는 떨리지 않는 손으로 머리를 뒤로 빗어넘

겼다.

  “이젠 기분이 훨씬 나아졌습니다.”

  “그래?”

  쉬린은 조금 놀란 것 같았다.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금 전까지는 신경과민이었나 봅니다. 교수님의 이야기와 중력에 관해 듣고, 

일식이 시작되는  것을 직접 보고 하는 바람에 거의 죽을 뻔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테레몬은 엄지손가락으로 노란  턱수염을 기른 컬트교도를 경멸적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런 이야기는  제 유모가 제게  말하곤 하던 이야기들입니다.  저는 언제나 이런 이야기는 웃어 넘겨  왔습니다. 

이제 그런 이야기에 놀라지는 않을 겁니다.”

  그는 깊은 숨을 한 번 쉬고 나서 매우 유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저는 제  자신의 좋은 면만 간직하고 싶습니다. 창문에서  의자를 멀리 띄워 놓겠습니다.”

  그는 주의깊에 창문에서  의자를 돌려 놓고는 어깨  너머를 불쾌하다는 듯 한 번 쳐다보고 말했다.

  “저는 이 <별의 광기>에  상당한 면역성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심리학자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베타는 천정을 지나고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 창문의 모양을 비추고 있던  핏빛 사각형은 이제 쉬린의 무릎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른 생가에 잠겨서  그 음침한 빛을 보고 있다가 허리를  굽힌 다음 눈을 가늘게 뜨고 태양  그 자체를 바라보았다.

 한쪽 가장자리의 작은  조각이었던 것이 이제는 베타의 3분의 1정도를 침범하고있었다. 그는 전율했다. 

그가 다시  허리를 폈을 때 그의 혈색 좋던 뺨에서는 원래의 빛을 찾아 볼 수 없었다.

  거의 변명하듯이 웃으면서 그도 역시 의자를 뒤로 돌렸다.

  “싸로 시에 사는 약 2백만  명의 사람들이 이 한 번의 거대한 사건으로 즉시 컬트교에 가입하려고 하고 있네.”

  그리고 나서 그는 비꼬는 듯한 투로 덧붙였다.

  “컬트교는 한 시간 동안 전례없는 부흥을 이루게  될 것이네. 그들은 그 순간을 최대한 이용할 것이 틀림없네. 

그런데 자네가 하던 이야기는 뭐였지?”

  “그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어떻게  컬트교도들은 여러 문명  주기에 걸쳐서 묵시록을 보존하고 관리해 올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도대체 그 책은 처음에 어떻게 씌어질 수 있었을까요? 어떤 종류의 면역성이 존재해 왔음이 틀림없습니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미치광이가 되었다면 누가  남아서 그 책을 썼겠습니까?”

  “자연스럽게, 최초에 그 책은 역사학자로서의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사람들, 즉 어린아이나 저능아들의  증언을 토대로 

하여 씌어 졌다네. 그리고  아마 여러 문명 주기에 걸쳐 광범위하게 재편집되었을걸세.”

  테레몬이 끼어 들었다.

  “그럼 교수님은,  우리가 중력의 비밀을  다음 주기로 전달하려고  하는 바로 그 방법을 이용해서 그들이 그 책을 전해 오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쉬린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아마도. 하지만  정확한 방법이 무엇이었나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네. 내가 주목하는 점은 그 책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비록 사실에 근거했다 하더라도  오히려 왜곡된 내용이라는 점이네.  예를 들자면, 파로와 이모트가 지붕에 구멍을 

뚫고 했던 실험이  그 예지. 아무 효과가 없었던 그 실험 말일세.”

  “네?”

  “자네는 왜 그 실험이 효과가 없었는지 알고...”

  그는 말은 멈추고 놀라면서 일어났다. 아톤이  놀라서 일그러진 표정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아톤은 그를 한쪽으로 끌고 갔다. 쉬린은 그의  팔꿈치를 잡고 있는 아톤의 손가락이 경련하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큰소리로 말하지 말게.”

  아톤의 낮은 목소리는 불안에 떨고 있었다.

  “방금 비밀회선을 통해 대피소로부터 연락을 받았네.”

  쉬린은 말을 가로채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들에게 문제가 있나?”

  “그들이 아닐세.”

  아톤은 그들이라는 말을 강조하면서 말했다.

  “그들은 조금  전 대피소를 폐쇄시켰네.  모레까지는 거기 묻혀진  채로 있게 될걸세. 그들은 안전해.  그러나 쉬린, 도시가... 

도시는  지금 수라장이네. 자네는 몰라...”

  그는 말하기 힘든 것 같았다.

  “뭐라고?”

  쉬린은 조급하게 말했다.

  “그게 어쨌단 말인가?  도시 상황은 점점 나빠질걸세. 도대체  뭘 걱정하고 있는 건가?”

  그리고 나서 그는 의심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자네 지금 기분은 어떤가?”

  아톤은 그의 암시에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가 다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돌

아와서 말했다.

  “자네는 이해 못  하네. 컬트교도들은 활동적이야. 그들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함께 천문대로 몰려오고 있다네.  

그들은 약속을 하지. 지금 즉시 은총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들은 뭐든지 약속한다네. 

쉬린, 어떻게 하면 좋지?”

  “도박을 해보는  수밖에 없지. 위험할  만큼 많은 수의  폭도들을 조직하려면 시간이 걸릴걸세. 

그들을 여기까지 끌고 오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테고. 우리는 도시에서 5마일은 족히 떨어져있네.”

  그는 창밖을 응시했다.  비탈길 아래 경작지가 끝나고 교외의 하얀  집들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나,  꺼져 가는 베타의 광채 

속에 안개처럼  보이는 지평선 위로 대도시 그 자체가 희미하게 보이는 곳까지 바라보았다.

  그는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시간이 걸릴걸세. 계속 일하게, 그리고 개기식이 먼저 오기를 기도하게나.”

  베타는 절반이 잘려  나가서, 나누는 선이 태양의 아직도 밝은면  쪽으로 약간 들어간 곡선을 이루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이  세계를 비추는 빛 위에서 비스듬하게 감고 있는 거대한 눈썹처럼 보였다.  

방에서 희미하게 딸깍거리던 소리들도 망각 속으로 사라지고 지금 그는 오직 창 밖 들판의 무거운 침묵만 느끼고 있었다. 

곤충들조차 놀라서 침묵해 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모든 사물이 희미해졌다.

 그는 귓전에서 들리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테레몬이 말했다.

  “뭐가 잘못 되었습니까?”

  “응? 아, 아니야. 의자로 가서 앉게. 우리는 잘해 나가고 있어.”

  그들은 자기들이  있던 구석 쪽으로  미끄러져 갔다. 그러나  심리학자는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목깃을 풀고 목을 앞뒤로  흔들어 보았지만 기분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자네, 숨쉬기가 힘들지 않나?”

  신문기자는 눈을 크게 뜨고 두세 번 큰숨을 쉬었다.

  “아뇨, 왜 그러십니까?”

  “나는 아마 창 밖을 너무  오래 보고 있었나 보네. 어둠에 취해 버렸어. 폐쇄공포증의 맨 첫번째 증세 중의 하나가

 바로 호흡 곤란이라네.”

  테레몬은 다시 한번 큰숨을 내쉬었다.

  “아직 저는 괜찮습니다. 저기 또 한 사람 오는군요.”

  비니는 구석에 있는 두 사람 앞에서 빛을  등지고 서 있었다. 쉬린은 걱정스런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천문학자는 체중을 다른 발로 옮기면서 힘없이 웃었다.

  “잠시 앉아서 대화에 참가해도 괜찮겠지요? 제 카메라는 설치가 끝났고 개기식까지는 할 일이 없습니다.”

  비니는 말을  멈추고 컬트교도에게 눈을  돌렸다. 그는 15분  전부터 소매에서 작은 가죽표지의 책을 꺼내서 줄곧 그 책만 

열심히 보고 있었다.

  “저 녀석이 무슨 말썽을 부리지는 않았습니까?”

  쉬린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어깨를 뒤로 젖히고 규칙적으로 숨을  쉬려고 노력하느라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숨쉬는 데 지장을 느끼지 않나, 비니?”

  비니는 돌아서면서 코로 숨을 들이쉬었다.

  “전 별로 거북하지 않은데요?”

  “폐소공포증이라네.”

  쉬린은 변명하듯 설명했다.

  “오오! 그 증세는  내겐 조금 다르게 나타났네. 마치  내 눈이 뒤로 당겨지는 듯한 느낌이야.  사물이 흐릿하게 보이고..., 

글쎄  아무것도 분명히 보이질 않네. 그리고 추워.”

  “네, 춥습니다. 맞아요. 그건 착각이 아닙니다.”

  테레몬은 얼굴을 찡그렸다.

  “저는 마치 발가락을 냉동차에 싣고 온 나라를 가로질러 운반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쉬린은 말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우리의 마음을 바깥일에 모두  빼앗기는 걸세. 테레몬, 나는 조금 전  자네에게 지붕에 구멍을 뚫고 

했던  파로의 실험이 왜 아무 결과 없이 끝났는지를 말하고 있었네.”

  “교수님은 말씀을 꺼내기만 하셨습니다.”

  테레몬은 대답했다. 그는 두 팔로 무릎을 감싸안고 뺨을 비비고 있었다.

  “맞아, 말을 꺼내기만 했었지. 그들은 묵시록을 씌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실수를 저질렀다네.

 그 책에는  아마 별들에 대해 아무런 과학적인 의미도  부여되지 않았을걸세. 자네도 알다시피  완전한 암흑 속에서 

인간의 마음은 빛을  만드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느끼게 된다네. 

빛에 대한 이런한  환상 때문에 별들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게 되는 것이지. 다른 말로 하면.”

  테레몬이 말을 가로챘다.

  “별은 광기의 결과이지 그 원인이 아니란  말씀이시군요. 그렇다면 비니의 사진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내가 아는 한, 그것이 환상이라는 것 또는  그 반대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필요하지. 그리고 다시...”

  그러나 그때  비니가 의자를 가까이  당겨 앉았다. 그의  얼굴에는 갑작스럽게 열정이 떠올랐다.

  “두 분께서 이런 이야기를 화제로 삼고 계시는 것을 보니 즐겁습니다.”

  비니는 눈을 가늘게 뜨고 손가락을 쳐들었다.

  “저는 별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가 정말로  근사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물론 그건 물거품 같은  개념이지요.

 저는 그런 개념을 진지하게 발전시킬  생각 같은 건 없습니다만 재미는 있을 겁니다.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반쯤은 마지 못해 하는 듯이, 쉬린은 뒤로 기대며 말했다.

  “계속하게, 듣고 있네.”

  “좋습니다. 그럼, 우주에 또 다른 태양들이 존재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비니는 수줍어하면서 잠시 말을 멈췄다.

  “제 얘기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 눈에 보이기에는 너무 어두운 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치 제가  공상소설을 읽고 있는 것처럼  들릴 것 같습니다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네. 물론 그 태양들이 중력법칙에 따라  서로의 인력에 

이끌려서 결국 눈에 보이게 될 것이라는 가능성은 배제되어 있네만.”

  비니가 대답했다.

  “그 태양들이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다면이 아니라, 정말로 멀리(4광년 또는 그 이상)떨어져  있다면 말입니다. 

그럼 우리는  섭동을 측정할 수 없을  겁니다. 

섭동의 크기가 너무 작기 때문이죠.  그 정도로 먼 거리에 많은 별들, 12개나 또는 24개 정도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테레몬은 노래부르듯이 휘파람을 불었다.

  “훌륭한 일요일 숙제로군. 우주 속에서 8광년  떨어진 거리에 있는 12개의 태양이라, 우와! 그건 아마 우리  우주를 짜부라

뜨려서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 버릴걸? 독자들은 그 책을 먹어 버릴 거야.”

  “생각일 뿐입니다.”

  비니는 씩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요점을 이해하고 계십니다. 일식이  진행중인 동안 이 12개의 태양은 눈에 보이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을 가릴 진짜 태양이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죠.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것들은 마치  조그만 공기돌처럼 

작게 보이게 됩니다. 물론 컬트교도들은 수백만  개의 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만 그건 아마 과장일 겁니다. 

우주에는 백만 개의 태양이 있을 공간이 없습니다. 있다면 서로 들러붙어 버리겠죠.”

  쉬린은 점점 관심을 더해 가며 듣도 있었다.

  “비니, 자네는 뭔가 중요한 것을  알아 낸 것 같네.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나 하는 것에  대해서는 과장이 정답인 것  같네. 

우리의 마음은, 자네도 알겠지만, 5이상 되는 숫자는 직접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네. 그 이상의 숫자에 대해서는 <많다>라는 개념만이  

존재하지. 12는 백만이 될  수도 있다네. 정말 훌륭한 생각이야.”

  “그리고 저는 또 다른 작은 개념 하나를 생각해 봤습니다.”

  비니는 말했다.

  “충분히 단순한 중력계에서 인력이 얼마나 쉬운 문제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이 우주에 단지 한 개의 태양만 가지는  행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행성은 완벽한 타원궤도를 그릴  것이고 중력이 

너무나 정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하나의 공리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세계의 천문학자들은 망원경이 

발견되기도  전에 벌써 중력에 대해 알고 있을  겁니다. 맨눈으로만 관측해도 충분하지요.”

  “매우 훌륭한 생각이야.”

  쉬린은 비니의 가정을 받아들였다.

  “이상기체나 절대영도 같은 순수한 이상으로는.”

  “물론,”

  비니는 계속해서 얘기했다.

  “그런 행성에는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열과  빛이 충분하지 않을 것이고,  만약 그 행성이 자전한다면 

하루의 절반은  완전히 캄캄해져 버립니다. 그런 환경에서 생명체의 발생(그것은 근본적으로 빛에 의존하기 때문에)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쉬린이 갑자기 뛰어 일어나는 바람에 의자가 뒤로 주루륵 밀려 나갔다.

  “아톤이 빛을 가지고 왔다네.”

  비니는 <허!>하고 말하며 돌아보고  나서 입이 찢어질 정도로 웃었다. 아톤은 팔에 길이가 한 자 정도 되고 굵기가 3센티 정도 

되는 막대기들을 들고 서서 연구원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종교 의식에 사용되는 가장 신성한 물건을 수행하는 분위기로 쉬린은 크고 거친 성냥개비 하나를  탁탁 튀는 소리를 내는  생명체

로 만들어서 아톤에게 넘겨 주었고, 아톤은 그 불꽃을 막대기의 한쪽 끝으로 옮겼다.

  그것은 잠시 동안 꼭대기 근처에서 변변찮게 타고 있다가 갑자기 타닥 소리를 내며 섬광을 일으켜  아톤의 주름진 얼굴을 노랗게

 비췄다. 그가  성냥을 던지자 동시에 환호 소리가  일어나고 창문이 부르르 떨렸다. 

막대기 끝에서는  활활 타오른 불꽃이 흔들리고  있었다. 같은 방법으로 다른 막대기에도 불이  붙어서 여섯 개의 독립된 불이 방의 

뒤쪽을 노란빛으로 물들였다.

  그 빛은 어두웠다. 희박한 태양보다더 더 어두웠다. 불꽃은 미친듯이 비틀거려서 그림자를  술에 취한 듯이  흔들리게 만들었다. 

횃불에서는  지독하게 연기가 많이 났고 마치 부엌에서 뭔가를 태우는 것  같은 냄새가 났다. 

그러나 횃불들은 노란빛을 내뿜고 있었다. 베타의 음침하고 어두운 빛과  함께 네 시간을 보낸 뒤여서인지 그 노란빛 속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라티머조차 책에서 눈을 떼고 경이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테레몬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횃불을 주시했다. 그는 코를 벌름거리며 고약한 냄새를 맡고 나서 말했다.

  “이건 뭘로 만든 겁니까?”

  “나무라네.”

  쉬린은 짧게 대답했다.

  “오, 아닙니다.  나무가 아닌데요? 나무가 타고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꼭대기 3센티는 숯으로 되어 있고, 불꽃이 어디에서 일어나는지 모르겠군요.”

  “그것이 바로 이  물건의 멋있는 점이라네. 이것은 정말 효율적인  인공 광원이야. 

우리는 이런 것을 한  2, 3백 개 정도 만들었는데 물론 대부분은 대피소에 갔다 뒀지. 보게나.”

  쉬린은 돌아서서 검게 더럽혀진 손을 손수건에 닦고 말했다.

  “갈대의 심을 뽑아서 완전히 말린 다음 동물  수지에 적신다네. 그 다음에 불을 붙이면 기름이 조금씩  타들어가지. 

이 횃불은 거의 30분 동안  쉬지 않고 탄다네. 교묘하지, 안 그런가? 

우리 싸로대학교의 젊은 친구 하나가 개발한 작품이라네.”

  어쨌든 분위기는 점점  무거워져 갔다. 

황혼은 마치 뚜렷한 실체처럼  방 안으로 들어와서 횃불 주위에서 춤추는 노란빛의 원을 주위에 엄습하는 회색빛 속에 

뚜렷하게 새겨 놓았다.

연기에서 나는  악취와 횃불이 탈 때  나는 탁탁거리는 작은 소리,  탁자 주위를 조심스럽게 발끝으로 다니면서 일하는 어떤 

사람의  부드러운 발끌림 소리, 가끔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세계 속에서 냉정을 잃지 않으려고 누군가가 숨을 들이쉬는 

소리 이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상한 소음을 가장  먼저 들은 것은 테레몬이었다. 

그것은 공허하고  아무 체계도 없는 듯한  소리였는데, 돔을 가득 채우고 있는 죽음의  침묵이 아니었다면 거의 알아차릴 수  

없었을 것 같았다. 신문기자는 똑바로 앉아서  수첩을 바로잡았다. 

테레몬은 숨을 멈추고 듣고 있다가  마지못해 일어나 태양망원경과 비니의 카메라 사이로 가서 창문 앞에 섰다.

  베타는 이제 연기내며 타는 한낱  파편이 되어 그 마지막 절망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도시쪽의 동쪽  지평선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고, 싸로에서 천문대로 오는 , 양쪽 가장자리에 나무를 심어  놓은 도로는 

흐릿한 붉은색으로 보였는데 거기 서 있는 나무들은 하나 하나를 알아볼 수 없게 뭉쳐서 연속된 그림자 덩어리로 보였다.

  그러나 주위를  끈 것은 도로 그  자체였다. 도로를 따라 한없이  많은 군중의 

그림자가 물결치고 있었다. 이톤은 갈라진 목소리로 외쳤다.

  “도시의 미친 군중들! 그들이 왔어!”

  “개기식까지는 얼마나 남았지?”

  쉬린이 물었다.

  “15분. 그러나... 그러나 그들은 5분이면 이곳에 도착한다네.”

  “괜찮아, 사람들보고 계속 일하라고 하게. 그들은  막을 수 있네. 이곳은 요새

처럼 지은 곳이라네. 아톤,  우리의 젊은 컬트교도를 감시하며 행운이나 빌고 있게. 테레몬, 나와 함께 가세.”


  쉬린은 문 밖에 섰고 테레몬은 그의 뒤꿈치에  서 있었다. 

그들 발아래 계단은 건물의 주기둥 둘레를  둥글게 휘감고 내려가서 그  끝은 습기차고 음산한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처음 한순간 그들은 15미터 정도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그러자 돔의 열린 문에서 어둡게 깜빡거리며 비치던 노란빛이 

사라져 버리고 위아래 모두 음침한 그림자가 그들을 덮쳐 왔다.

  쉬린은 멈춰서서 짧고 두터운 손으로 가슴을 꽉  잡았다. 그는 툭 튀어나온 눈을 하고 마른 기침 소리를 내며 말했다.

  “나는... 숨을... 쉴... 수가... 없네... 자네 혼자... 가게... 문을 모두 닫아.”

  테레몬은 몇 발자국 더 내려가다가 돌아왔다.

  “기다려요! 한 1분만 참으실 수 없겠습니까?”

  테레몬은 헐떡거리면서  말했다. 그의 폐를  드나드는 공기는 마치  같은 양의 당밀이 드나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바로  발밑에 있는 불가사의한  어둠 속으로 내려간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그는  공포에 질려 날카로운 비명을 지를 것 같

았다. 테레몬도 결국 어둠이 두려웠던 것이다.

  “여기 계십시오. 곧 돌아오겠습니다.”

  테레몬은 한 번에 두 계단씩 밟으며 위로  뛰어 올라갔다. 단지 빨리 돌아가려

는 노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심장이 미칠 듯이 고동쳤다. 

그는 돔으로 구르듯이 뛰어 들어가서 횃불을 벽걸이에서 낚아챘다. 횃불에서는  지독한 냄새가 났고 연기 때문에 눈이 쓰려서 

앞이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마치 기뻐서 키스라도 할 듯이 횃불을 움켜쥐었다. 

그가 다시 계단을  돌진해 내려가자 횃불이 뒤로 길게 늘어졌다.

  테레몬이 내려다보자 쉬린은 눈을 뜨고 신음하고  있었다. 테레몬은 그를 거칠게 흔들었다.

  “괜찮습니다. 당황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겐 빛이 있습니다.”

  그는 발 옆에  횃불을 세우고 버둥대는 심리학자를  팔로 받치고 나서 안전한 

빛의 원 한가운데에 그의 머리를 내려놓았다.

  1층에 있는 사무실들은 아직 빛이 있을  때와 같은 상태였다. 테레몬은 자기를 둘러싸고 있던 공포감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여기 있습니다.”

  그는 퉁명스럽게 내뱉고는 횃불을 쉬린에게 건네 주었다.

  “밖에서 그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실제로 들을 수 있었다. 떠들썩한 소음의 파편들과 무언의 외침을.

  역시 쉬린이 옳았다. 천문대는  마치 요새처럼 지어져 있었다.

 지난 세기에 신가보티안 양식의 건축이 전성기를 맞고 있을 즈음 건축되었기 때문에 미적인 면보다는 안정성과 지속성에 더 

치중하여 설계된 건물이었다.

  창문은 콘크리트 창턱에  깊이 박혀 있는 두꺼운  강철 창살로 보호되어 있었

다. 벽은 단단한 돌로 되어 있었는데 지진에도  끄떡없을 것 같았고 정문은 전략적인 면을 고려하여 강철로 강화된 거대한  

참나무판으로 되어 있었다. 테레몬이 빗장을 지르자 둔탁하게 덜커덩 소리를 내며 닫혔다.

  회랑의 반대편 끝에서 쉬린이 욕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여왔다. 그는 솜씨좋게 쇠지레로 뒤집어 놓아서 쓸모없게 되어 버린 

뒷문의 자물쇠를 가리키고 있었다.

  “라티머가 들어올 때 이렇게 해놓은 것이 틀림없어.”

  쉬린이 말했다.

  “자, 거기 서계시지 마십시오.”

  테레몬은 조급하게 소리질렀다.

  “가구들을 끌어내는 거나 도와주십시오. 제 눈앞에서  횃불 좀 치워 주시겠습니까? 연기 때문에 죽겠습니다.”

  테레몬은 두꺼운 탁자를  문에 쾅 하고 밀어붙였다. 그리고 몇분이  지나자 그는 미와 조화가 결여된,  단지 그 무게의 관성에

 따라 만들어진  장벽을 하나 설치해 놓았다.

  어디선가 희미하게 맨주먹으로  뭄을 맹렬히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밖에서 들리는 비명과 고함 소리도 반쯤은 알아

들을 수 있었다.

  폭도들은 싸로 시를 떠날 때 두 가지  생각만을 마음에 담고 출발했다. 

그것은 천문대를 파괴함으로써  컬트교의 구원을 얻는다는 것과  그들은 거의 마비시켜 버린 미칠 듯한 공포였다.  

자동차나 무기, 지도자나 조직에 대해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그들은 천문대까지 걸어와서 맨손으로 공격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도착했을 때, 베타의 마지막 빛, 불꽃의 마지막 루비빛 붉은 방울이 이제 삭막한,  전세계적인 공포만이 남은

 인류의 머리 위에서  미약하게 깜박이고 있었다!

  테레몬은 신음 소리를 냈다.

  “돔으로 돌아갑시다!”


  돔에서는 이모트만이 태양망원경  앞의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머지는 카메라를 둘러싸고 있었는데, 

비니가 쉰 목소리로  떠들썩하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기억하십시오. 절대...  절대 좋은 사진을 기대하지는  마십시오. 두, 두 개의 별을 동시에 카메라  시야 속에 넣느라고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하나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그리고 만약 자기가 미칠 것 같은 조짐이 보이면 카메라에서 

멀리 도망가십시오.”

  문에서 쉬린은 케레몬에게 속삭였다.

  “아톤에게 데려다 주게. 나는 그를 볼 수가 없다네.”

  신문기자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천문학자들의 공허한 모습이  흐릿하게 흔들거렸다. 머리 위에 있는 횃불은 마치 

노란 얼룩처럼 보였다.

  “너무 어둡습니다.”

  테레몬은 울먹이듯이 말했다.

  쉬린은 손을 내밀었다.

  “아톤.”

  쉬린은 앞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아톤!”

  테레몬은 뒤따라가서 그의 팔을 잡았다.

  “잠깐, 제가 모시겠습니다.”

  그는 방을 가로질러 갔다. 그리고 어둠에 대해  눈을 감고 암흑속에 있을 혼란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닫았다. 

아무도 그들의 소리를 듣지도,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쉬린은 벽을 향하여 비틀거리며 다가섰다.

  “아톤!”

  심리학자는 떨리는 손 하나가  자기를 치더니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 오는 것을 느꼈다.

  “쉬린, 자넨가?”

  “아톤!”

  그는 숨을 고르게 가누려고 애쓰며 말했다.

  “폭도들은 걱정하지 말게. 이곳은 그들을 막아 줄걸세.”


  베타의 마지막 햇빛을 바라보는 비니의 얼굴이  희미하게 빛났다. 

카메라 위에 허리를 굽히고 있는 비니를 보던 라티머는 결정을  내렸다. 그는 자기 몸을 긴장시키는 동안 손톱으로 자기 

손바닥의 살점을 뜯어내고 있었다.」

  그는 뛰기 시작하면서 미친 듯이 비틀거렸다. 그의 앞에는 그림자밖에 없었다. 그의 발밑 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누군가가 그를 덮쳐서  바닥에 넘어뜨린 후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라티머는 무릎을 굽히고 공격자를  강하게 걷어찼다.

  “일으켜 주지 않으면 죽여 버릴 테다.”

  테레몬은 날카롭게 고함을 지르고는 고통스런 오리무중의 어둠속에서 낮게 으르렁거렸다.

  “이 배신자 녀석!”

  신문기자는 모든 것을  단숨에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는 비니가  쉰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   

  “잡았습니다, 카메라로. 여러분!”

  그러자 모두들 마지막 횃불이  엷어지다가 마침내 사라져 버렸다는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라티머의 손에서 힘이 풀리면서 축 늘어졌다.  테레몬은 컬크교도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위를 쳐다보는 검은 동자 속에서  횃불의 반짝이는 노란빛이 반사되고 있었다. 

라티머의 입술 사이에서 거품방울이 끓어  오르고 그의 목에서 동물적인 흐느낌 소리가 나고 있었다.

  서서히 두려움에 질려서 그는 한쪽 팔을 짚고  일어나 창 밖으로, 피도 얼어붙을 것 같은 암흑으로 눈을 돌렸다.

  창문을 통하여 별이 빛나고 있었다!

  지구에서 맨눈으로 볼  수 있는 360개의 반짝이는 별들이  아니었다. 라가쉬는 거대한 성단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것이다. 

3만  개의 강력한 태양이 지금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모진 바람보다 더욱 무섭게  차가운 무관심으로 영혼조차 태원 버릴 

듯한 광채를  내리비추고 있었다. 우주의 찬란한 벽이 산산히  부숴져 무서운 검은 파편들이 인간을  짓밟고, 압박하고, 

말살하기 위하여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빛이다!”

  테레몬은 비명을 질렀다.

  어딘가에서 아톤이 마치 놀란 아이처럼 떨며 울부짖고 있었다.

  “별... 모두 별이야... 우린 전혀 모르고  있었어. 우린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거야. 우리는 이 우주에서 여섯  개의 별이 

전부 다인 줄 알았고 암흑이 영원히, 영원히, 영원하리라고 생각했는데  저 별이 갑자기 나타났어.  

우리는 몰랐어, 우리는 알 수가 없었어. 아무것도...”

  누군가 횃불을 집어던져서  꺼버렸다. 바로 그 순간 별의 무서운  광채는 그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싸로 시 쪽으로 난 창  밖의 지평선 위로 심홍색의 빛이 점점 밝게 커지고 있었다. 

그것은 태양빛이 아닌 두려움에 떠는 인간들이 만들어 낸 불빛이었다.

  전설의 밤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