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A. 린의 창작 단편소설입니다.
작가님의 풍부한 상상력과 기발한 작품을 소개하고자 퍼왔습니다.
문제가 될 시 삭제하겠습니다.
출처 : http://bbs.ruliweb.com/hobby/board/300145/read/17323312
[SF 단편] 공중전화부스의 여인
by 엘리자베스 A. 린
발췌 : JunkSF net (세계 SF 걸작선;고려원미디어,1992)
저자 : 엘리자베스 A. 린(Elizabeth A. Lynn)
공중전화부스의 여인
내가 그 여자를 본 것은 언제나처럼 퇴근길의 버스를 타고 22번 도로를 지나갈 때였다. 그 여자는 공중전화박스에 앉아 있었다.
전화를 걸고 있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 뒤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었다. 앞 사람이 통화를 빨리 끝냈으면 하고 기다릴 경우에는 흔히
초조한 마음으로 전화기를 바라보기 마련이지만, 그녀는 바닥에 퍼질러 앉아 있었다. 두 팔로 무릎을 감싸 안은 채 아주 편한 자세로.
집에 거의 다다른 지점이었으므로 난 버스에서 내려 천천히 공중전화박스쪽으로 걸어갔다.
난 원래 호기심이 많아 이런 일은 종종 있는 편이다. 그 여자가 왜 거기에 앉아 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평소에 나는 공중전화박스란 것을 그다지 마땅찮게 생각하고 있었다. 요란하고 꼴불견인 낙서로 더렵혀지지 않은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게다가 박스 안은 너무 비좁고, 전화기는 고장나서 불통이기 일쑤다. 또 투명해서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여하튼 공중전화를 이용하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난 공중전화박스로 걸어가서 자연스럽게 팔을 문에 기대면서 그 여자에게 물었다.
" 무슨 일이 있나요 ? 왜 이 안에 앉아 계신지 ? "
그 여자는 내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힐끗 올려다보더니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 친구를 기다리고 있어요. 근데 좀 일러서."
갈색 피부에 갈색 눈, 그리고 갈색 머리의 멋진 외모를 가진 여자였다. 긴 머리는 뒤로 넘겨 묶었는데, 그 매듭이 이제껏 전혀 본 적이 없는 기묘한
모양이라서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은 좀 비스듬하게 생긴 생소한 형태라서 도대체 어디에서 온 사람인지, 부모의 혈통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그래서 물어 보았다. 나는 원래 수줍음을 잘 타지 않으니까.
그녀는 말해주었다. 그런데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지명이었다.
" 그게 어디 있는거죠 ? "
그녀는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 14광년쯤 떨어져 있어요."
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멍청하지는 않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다른 별에서 왔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난 물론 믿지 않았다. 만일 누군가가 당신에게 '난 다른 별에서 왔소'라고 말한다면, 틀림없이 그가 우리와는 다른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거나
최소한 어딘가 이상한 분위기를 풍기리라고 예상할 것이다. 그러나 이 여자는 양 손에 손가락이 다섯 개씩 달려 있었고 눈도 두 개였으며 코도
하나인 것이 보통 사람들과 전혀 다른 점이 없었다. 심지어는 입에서 치약 냄새까지 났다. 그래서 난 그녀가 나를 놀린다고 생각했다.
재미있군, 그럼 장단을 맞추어 줄까 ?
" 오 그래요 ? 그런데 공중전화박스 안엔 왜 앉아있죠 ? "
난 영화나 SF에서 읽었던 내용을 떠올렸다.
" 워싱턴이나 백악관에 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 그래서 '나를 당신들의 지도자와 만나게 해 주시오' 하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 "
" 대통령이요 ? "
그녀는 웃었다.
" 누가 그런 사람하고 얘길 하겠어요 ? "
나 역시 그녀의 의견에 동감이었으므로 같이 웃는 것으로 그 얘기는 끝났다.
" 공중전화박스는 아주 유용한 물건이에요. 누구든 사용할 수 있고 그다지 까다로운 방법도 아니지요.
문명 사회에서는 어느 도시, 어느 마을을 가도 반드시 있게 마련이에요. 가볍고, 운반하기 쉽고, 또 누가 봐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지요.
없던 곳에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거나 또 갑자기 사라져버려도 말이에요. 이건 -- "
그녀는 플라스틱 문을 손으로 툭 치며 말을 계속했다.
" -- 제가 한 다섯 달동안 타고 다닌 거에요."
뭐뭐, 아니 잠깐만. 날아다니는 공중전화박스라고 ? 비행접시 소동도 모자라서 이번엔 공중전화박스까지 ?
그런데 그녀는 진지하게 말하고 있었다. 난 궁금하다 못해 초조해졌다. 그래서 내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을 생각하다 전화 박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 아, 전화기는 불통이에요. 연결을 끊어 놓았죠. 그건 시카고에서 가져 온 건데. "
난 다이얼을 살펴보았다. 지역번호는 312번으로 적혀 있었으나 그 앞의 번호는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하긴 이 나라는 워낙 땅덩이가 넓으니까.
그녀와 농담을 주고 받는 것이 재미있었다.
" 근데 당신이 그 뭐냐,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인데 공중전화박스를 타고 여행을 한단 말이에요 ? 그건 음, 좀 우아하지 못한 방법 아닌가요 ?
우리나라 정부와 얘기를 하던지 아니면 우리를 데려가던지 하려면 우주선이 날아와야 하는 것 아닌가요 ? "
" 당신네 정부하고 얘기를 왜 해요 ? "
" 그럼 도대체 지구에서 뭘 하고 있죠 ? "
" 연구하고 있어요."
좀 짜증섞인 대답이었다.
" 아하, 통계국에서 무슨 조사 업무를 하시는가 보군요. "
난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을 알고 있었다. 오빠도 지방정부에서 연봉 1만7천 달러를 받고 지역주민들의 사회지표 조사 및 연구를 한 적이 있다.
" 아니에요."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마침 지나가던 버스를 바라보며 그녀는 말을 계속했다.
" 학교에 있어요. 은하계 비교문화학 437번 이지요."
" 대학원이요 ? "
짐작이 갔다. 내 친구중의 하나도 대학원 논문을 쓰느라 네팔에 6개월동안 다녀 온 적이 있다.
" 비슷한 거지요. 사실 학비가 좀 모자랐는데 어머니가 보태주셔서 예정보다 일찍 졸업했지요."
" 어느 학교를 졸업하셨는데요 ? "
" @ + # $ % * / - ~ ? = 이요."
그녀가 뭐라고 말했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난 기분이 좀 나빠지기 시작했다. 물론 이 여자가 외계인이라는 건 터무니없는 얘기다.
다만 공중전화에다 무슨 장난을 쳐 놓았는지가 궁금했다. 아마 전화회사에서 다른 지방에서 쓰던 것을 가져와 설치하려 했다가 깜박 잊고 그냥 놔
둔 모양이다. 아니, 전화는 멀쩡한지도 모르지. 이 여자 말을 믿을 필요는 없지.
난 수화기를 들고 동전을 꺼내 투입구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신호음이 떨어지는 걸 확인하고 다이얼을 돌렸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나를 박스 안으로 밀어 넣으면서 닫혀버렸다. 손을 뻗어 문을 밀었지만 잠겨진 것처럼 꼼짝하지 않았다.
" 불통이라고 그랬잖아요 ! "
그 여자는 내 손에서 수화기를 낚아채더니 도로 제 자리에 걸어놓았다. 그 바람에 그녀가 일어났으므로 비로소 왜 앉아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엄청나게 키가 컸던 것이다. 머리가 박스 천장에 닿았음에도 불구하고 구부정하게 서 있어야 될 만큼이었다.
" 당신이 배를 불러버리고 말았어요 ! "
" 배 ? 무슨 배요 ? "
" 누구든지 전화기를 들면 금방 날아와 버린다구요. 문은 자동으로 잠겨버리고.
어차피 배를 기다리던 참이었지만 예정보다 시간이 좀 남아서 그냥 앉아있었던 건데. 아마 당신을 보면 내가 채집한 표본인줄 알 거에요."
그녀는 나를 무섭게 쏘아보았다.
" 난 당신을 데려 갈 수 없어요. 그러니까 빨리 사라져버려요. 자, 빨리 나가요 ! "
그녀가 손으로 뭔가 이상한 동작을 취하자 문이 찰칵 열렸다.
난 나왔다. 공중전화박스가 무슨 방사성물체라도 되는 양 서둘러 그곳으로부터 떨어졌다. 그리고는 찻길을 가로질러 건너편으로 뛰어갔다.
길가에서 놀던 아이들이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는데, 아마 내 꼴이 좀 우스웠을 것이다.
난 어느 집 현관턱에 걸터 앉아 숨을 돌리고는 공중전화박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가 본 것은 -- 아무것도 없었다. 하늘에서 뭔가 눈에 안 보이는 것이 내려온 것도 같았는데, 투명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무슨 윤곽은
느껴졌다. 낡은 페인트칠이 벗겨져 가는 집들과 지저분한 거리 위로 뭔가 [텅 빈 공간] 같은 것이 둥둥 떠오고 있었다.
애써 눈으로 보려니까 현기증이 나서 나는 공중전화박스로 시선을 돌렸다.
그 여자는 그 안에 선 채로 있었다. 문은 닫혀 있었는데 아마 잠겼을 것이다. 분명히 그 여자가 말을 지어내서 나를 놀린거라고 생각했는데...
고장난 전화기를 갖고 장난을 치는 거라고 여겼는데...
나는 [배]가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텅 빈 공간]이 박스를 위에서부터 덮어싸고는 빨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박스가 위로 들려지면서 홀연히 사라졌고, 이윽고 그 [텅 빈 공간]에 가려 보이지 않던 거리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그것은 매우 빠른 속도로 상승하더니 사라져버렸다.
그것이 끝이었다.
그 뒤로 다시는 그 여자를 보지 못했다. 그녀와 비슷한 얼굴은 몇 번 보았지만 그저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다짜고짜 키 큰 사람에게 '당신 외계인지요 ?'라고 말했다가는 코나 얻어맞기 십상일 것이다. 물론 나는 신문사에 편지를 쓰거나 하지도 않았다.
여러분들과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나를 좀 멍청한 괴짜로 볼 것이 뻔했으므로.
실종된 사람들을 조사해 볼까 하는 생각도 했으나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난 수줍음을 안 타는 편이긴 하지만 실종된 사람들의 가족에게 가서 '혹시 공중전화 걸러 나갔다가 없어지지 않았나요 ?' 라고 물어 볼 철면피는 아니다.
그 때 그 여자에게 물어봤어야 했다. '채집한 표본들은 다시 제 자리에 데려다 주나요 ?'
아무튼 뭐든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나면 나는 언제든지 실행에 옮길 생각이다.
그래서 여러분들께 말씀드리는데, 공중전화를 이용할 때에는 정말 조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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