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에 한 돌이킬 수 없는 약속


15년 전에 한 돌이킬 수 없는 약속

출처 : 1boon, 책끝을접다

https://1boon.kakao.com/dogear/153

[대체 텍스트]

얼굴의 절반 이상이

멍으로 뒤덮여 '괴물'처럼 태어난 나는

아기 때 부모에게 버려져 보육시설에서 자랐다.


외모 때문에 살면서 한 번도

삶의 밑바닥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고,

성인이 되어서도 나를 반기는 곳은

야쿠자가 이끄는 사기 도박판뿐이었다.


결국, 빚이 쌓이고 야쿠자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죽는 게 낫겠다는 심정으로

지하철 선로 위에 놓인 구름다리에 서서

아래를 보고 있었다.


그때, 그곳에서 노파를 만났다.


다리를 건너다 나를 발견한 노파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그러더니 자신의 집으로 나를 데려가 

식사까지 대접해 주었다.


식사를 마친 나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얻어먹고 나서 이런 말 하기 좀 뭣하지만

동정심 때문이더라도

낯선 사람을 집에 들이는 건 위험해요."


"별로 위험할 것도 없어요.

집에 훔쳐갈 만한 것도 없고.

단지 오랜만에 누군가와 함께

식사하고 싶었던 것뿐이에요."


그 날 이후로 몇 차례 노파의 집에서

함께 식사를 했다.

덕분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사정을 알게 됐다.


16년 전, 

노파는 남편을 사고로 잃고

홀로 딸을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뿐인 딸마저

두 사내에게 납치되어 능욕당한 후 살해당했다.


곧바로 체포된 두 범인은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을 받았고,

노인은 분노와 회한으로 얼룬진 삶을 살고있었다.


내 처지까지 알게 된 노파는

내게 한 가지를 제안했다.


"내 딸을 살해한 놈들이 나중에 교도소에서 나오면

그들을 죽여주세요.

약속만 해주면 내 전 재산을 드릴게요."


"내 손으로 죽이고 싶지만,

저는 3개월 전에 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어요.

난 그들이 나오기 전에 세상을 떠날 거예요.

부디 나 대신 내 딸의 한을 풀어주세요."


노파가 제안한 금액은

내 삶을 바꾸고도 남을 금액이었지만

돈을 위해 살인을 약속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노파가 암으로 곧 세상을 떠난다면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모를 것이었다.


결국, 나는 노파에게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노파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마워했고,

약속대로 돈을 주었다.


그 이후로 노파와는 연락이 끊어졌다.

나는 노파의 돈으로

성형수술을 해서 얼굴의 멍을 지우고,

새 호적을 구입해 새사람이 되었다.


이후 15년 동안 나는 썩 괜찮은 사업 파트너를 만나

그럴싸한 바를 하나 차렸고,

한 여자의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그렇게 과거의 흔적을 모두 지운 채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내 앞으로 발신인의 주소가 없는

편지가 한 통 도착했다.


"그들이 교도서에서 나왔습니다."

노파가 보낸 펴지였다.

편지를 본 순간 심장 박동 소리가 요란해지고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노파가 지금까지 살아있을 리 없었다.

게다가 겨우 완성된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절대로 망가뜨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 복잡한 마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일주일 정도가 흐르자

또다시 편지가 도착했다.


편지에는 두 범인의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었다.

봉투 안에는 몇 장의 사진도 들어있었다.


첫 번째 사진은

운동복 차림으로 담배를 피우며 파친코를 하고 있는

중년 남성의 사진이었다.


또 다른 한 장은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중년 남성의 옆얼굴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장은...


공원에서 놀고 있는 내 딸의 사진이었다.

그때, 15년 전 노파와 약속하던 날

그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약속을 지켜요.

만약 약속을 깬다면...

언젠가, 당신도 나와 똑같은 괴로움에 시달리게 될 거예요.'


그리고 얼마 후 도착한

세 번째 편지엔

믿을 수 없는 사실이 적혀있었다.


책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