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세상을 이름 없는 사람으로 살았다
나이 70에 새 인생을 시작했다
출처 : 1boon(책 끝을 접다)
https://1boon.kakao.com/dogear/163
[대체 텍스트]
어려서 몰래 공민학교에 갔다가
친정어머니는 여자가 무슨 공부냐고
호미를 들고 쫓아와서 그만뒀다.
학교는 아들만 다니는 거라고.
학교 가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뒷산 바위에 앉아 엉엉 울었다.
우는 나에게 어머니는 매를 들었다.
조금 더 커서는
글을 쓸 줄 모르고 읽을 줄 모르니
버스를 탈 때에도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타고
간판에 적힌 이름 하나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냐"고 핀잔을 주었다.
나가면 수많은 글자와 숫자가 보였지만
눈길을 돌리고 고개를 돌리고 살았다.
결혼해서는
남편은 내가 못 배운 것을 알고
성질만 나면 날 보고 은행에 가서
돈을 찾아오라고 시켰다.
그러면 나는 은행에 가서 땀을 쩔쩔 흘리며
2시간 동안 헤매다 빈손으로 돌아왔다.
글 모르는 죄로 남편에게 대들지도 못하고
울기만 하며 평생을 보냈다.
까막눈으로 결혼해
시부모님 아홉 식구
시어머니 병수발 10년
시아버지 병수발 또 10년...
할머니가 되어서는
손주가 "할머니, 동화책 읽어 주세요."하니
그 작은 동화책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일평생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인 줄 알고 있었는데
이제 내 나이 칠순에
한글 공부를 하게 되었다.
서명도 못 하냐고 무시하던 택배 아저씨도
이름도 못 쓰냐고 눈 흘기던 은행 아가씨도
이제는 무섭지 않다.
손도 굳고 귀도 어둡지만
글씨가 삐툴빼툴 못나도 부끄럽지 않다.
배우고 익히니
이제 연필 끝에서 시가 나온다.
그동안 못 배운 한이 시가 되어
꽃으로 피어난다.
좀 늦으면 어떻고
더디 가면 어떠니?
칠순에 시작한 한글공부
이만하면 훌륭하지.
*본 콘텐츠는
시집 <엄마의 꽃시>에 수록된
할머니들의 시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평생을 까막눈으로 살다가
뒤늦게 한글을 배우신 할머니들의 시를 엮은 책,
<엄마의 꽃시> 입니다.
이 책은 '전국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수상한 분들의 작품 중 100편을
김용택 시인이 엮어 만들었는데요.
시를 쓴 할머니들은
이제 겨우 글눈이 트여 맞춤법도 정확하지 않지만,
시가 전하는 울림은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느낄 수 있었고
각각의 시 한 편 마다 정성스레 답을 적은
김용택 시인의 글에서도
따뜻함이 느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책에 실린 시 한 편을
소개해 드립니다.
내 인생의 시작/임화자
어린 시절 글을 못 배운 나는
이 세상에 이름 없는 사람으로 살았다.
나는 이양복 씨 아내다
나는 상현이 엄마다
나는 유림이 할머니다
나는 지경집 며느리다
일평생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인 줄 알고 있었는대
강릉시 문화센터에 공부하러 다니면서
알게 되었다
선생님이 내 이름 불러주고
친구들이 내 이름 불러주고
출석부에 내 손으로 이름을 쓰니
나도 이름 있는 사람이 되었다
아름다운 내 이름을 찾았다
내 나이 70에 새 인생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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